곤충은 지구상 대부분의 생물권에 서식하는 가장 높은 다양 성을 가진 생물체로 사람들과 해충의 측면에서나 익충으로서 다양한 직 ‧ 간접적 상호작용을 하고 있다(Tüzün et al., 2015). 곤충의 다양한 서식처와 높은 생물적 적응으로 인하여 인간 생 활과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고, 이로 인하여 곤충을 대상으 로 하는 곤충학은 다양한 학문 분야로 파생되어 연구되고 있다. 이들 중 문화곤충학은 언어와 문학, 음악, 민속, 종교, 예술 등 인간의 마음과 영혼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활동들 속에서 곤 충들의 역할을 연구하는 분야로(Hogue, 2009) 인간 삶의 일부 이거나 인간 문화에 영향을 미치는 곤충 세계의 모든 측면이 이 범주에 속한다(Wennemann, 2004).
곤충은 인간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에 인간과 곤충 의 관계에서 형성된 문화곤충학은 민족이나 국가별에 따라 다 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으며 생활문화와 관련된 문화곤충학 의 범주에는 종교나 회화, 조각, 민요, 철학, 문학, 언어, 음악 및 민족곤충 등 다양한 분야가 포함된다(Nam and Ma, 2000). 따 라서 당시의 시대상이나 사회상이 투영되어 있는 문화곤충학 을 통해 곤충에 대한 인식이나 학문적 수준 등을 간접적으로 확 인할 수 있다(Lee, 2010).
우리나라에서 곤충과 관련된 기록은 신라 남해왕 15년(AD 18년) 농업 해충에 대한 기록이 시초이며 삼국사기에 37건의 해충 피해가 보고되어 일찍이 실용적인 면에서 곤충류에 대한 문제들이 생활 속에서 다루어져 왔다(Lee et al., 1991). 곤충학 연구와 관련된 역사는 일제강점기 이후부터 태동되어 비교적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곤충은 우리의 문화 전반에 다양하 게 표출되어 신화나 민담, 문학작품, 회화 등에서 오래 전부터 등장하고 있다(Park, 1997a, 1997b). 조선시대 정철의 사미인 곡(1587~1588)에 등장하는 범나비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기 록된 나비류로 추정되고 있으며(Park, 2001) 정철의 1580년 작 품인 훈민가에는 누에가 등장하고 있다(Lee, 2010).
우리나라에서 곤충학 관련 연구 역사는 짧지만 문화적으로 문헌상에 기록된 곤충 관련 역사는 기원이전까지 긴 역사성을 지니고 있다(Lee et al., 1991).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주 제를 다루는 문화곤충학 분야는 매우 제한적인 연구가 수행되 어 1990년대 이후에 구비문학에서 속담, 속신어, 신화와 민담 등에서 곤충관련 부분이 문화곤충학 범주로 소개 된 바 있다 (Park, 2001).
곤충은 이솝 우화에 등장하는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처럼 항 상 긍정적으로 표현되는 것은 아니지만 다양한 분위기와 이미 지를 설정하는데 유용하여 소설이나 시, 민담, 이야기 등의 문학 의 소재로 자주 사용되고 있다(Eddy, 1931;Park, 2001;Leather, 2015;Tüzün et al., 2015).
우리나라에서 문화곤충학 범주에서 문학작품과 관련된 곤 충연구는 신화와 민담에 얽힌 곤충과 관련된 연구(Park, 1997a, 1997b)와 19세기 말엽까지 고시조에 등장하는 곤충에 관한 연구 (Lee, 2010;Kim and Yu, 2016) 등 연구가 매우 미미한 실정이다.
시조는 13세기부터 현재까지 작품들이 나오고 있는 우리나 라의 전통 시가 문학의 하나로 형식과 글자수의 제약을 받는다. 따라서 이러한 작품들에서는 함축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시 어의 사용이 필요하고, 이러한 시어의 소재로서 곤충도 이용되 고 있다(Lee, 2010).
Lee (2010)는 선행연구에서 고려 말에서 19세기 후반까지 의 시조작품 2618수를 대상으로 곤충이 등장하는 시조 40편을 조사하여 9목 21종류의 등장 곤충을 보고한 바 있고, Kim and Yu (2016)는 6,762수의 고시조에서 곤충류 어휘의 빈도 수는 239회로 전체 동물 어휘 사용 빈도의 9.38%를 차지한다고 하 였다. 본 조사는 이들 연구의 후속 연구로서 근대 문학기로 구 분하고 있는 1900년에서 1945년 동안 우리나라에서 발표 된 시 조 문학에 등장하는 곤충의 종류와 시어의 의미를 조사하여 근 대화 과정에 우리나라 사람들의 정서와 관련된 곤충의 시대적 변화를 알아보고자 하였다.
재료 및 방법
조사 대상 시조는 기초학문자료센터의 계몽기 근대 시조의 XML 데이터의 문서화 토대연구 DB에 구축된 6,605건의 시조 를 대상(Korean Research Memory, 2018)으로 조사하였는데 1950년대 작품 1편은 제외하고 조사하였다. 각 시조가 발표된 문헌들은 아래와 같았다(괄호 안의 숫자는 편수).
가톨닉靑年(19), 가톨릭 朝鮮(1), 갈돕(8), 경북불교(4), 계명 시보(65), 고려시보(270), 교우회지(3), 국민보(15), 근업신문 (7), 기독신보(100), 농민(8), 농민생활(1), 대중공론(1), 대한매 일신보(341), 대한매일신보(국문본)(341), 대한민보(273), 대 한유학생회학보(2), 대한인정교보(1), 대한일보(1), 대한학회 월보(2), 대한흥학보(2), 뎨국신문(3), 독립(24), 독립신문(9), 동덕(1), 동령(2), 동명(1), 동성(2), 동아일보(934), 동진(2), 등 대(2), 룸비니[藍毘尼](15), 만국부인(2), 만선일보(18), 매일신 보(302), 명신(8), 무명탄(5), 문우(22), 문학(1), 반딧불(7), 백 파(1), 백합(4), 백합화(4), 보성(26), 부활운동(43), 불교① (232), 불청운동(12), 비판(23), 삼사문학(11), 새사람[新人](3), 생리(1), 서광(3), 서울(2), 세부란사교우회보(3), 소년(15), 송 우(6), 시대상(2), 시대일보(30), 시문학(3), 시온(4), 시원(7), 시천교월보(4), 신광(1), 신문계(24), 신문세계(4), 신민(64), 신 사회(1), 신소설(1), 신시대(2), 신우(7), 신지식(1), 신취미(1), 신한민보(214), 신흥조선(15), 실생활(10), 야담(15), 양정(13), 여명(3), 여성시대(5), 여성지우(2), 여인(2), 영남시보(1), 예술 (7), 요양촌(2), 용성(3), 웃음판(12), 월간매신(4), 이고(1), 일 월시보(10), 정음(7), 제일선(2), 조선농민(2), 조선문단(1), 조 선문예(13), 조선불교월보(11), 조선일보(439), 조선중앙일보 (47), 종교교육(4), 중성1(3), 중앙(14), 중앙일보(4), 천국복음 (5), 천주교회보(8), 청계(14), 청구신보(2), 청춘(15), 평론(1), 평범(6), 폐허이후(1), 학등(19), 학조(1), 학지광(2), 한글1(3), 한글2(9), 한빛(9), 함북공론(2), 함안(1), 해방(9), 혜성(3), 호 남평론(38), 호남학보(1), 호외(4), 一光(24), 三千里(126), 三千 里 文學(5), 中外日報(86), 中央校友會報(1), 五山(7), 京實(2), 人 文評論(6), 人道(14), 佛敎②(57), 佛敎時報(148), 信聖(2), 儆新 (5), 元山時論(1), 光成(9), 共濟(3), 別乾坤(15), 北鄕(5), 協實(7), 同窓會報(1), 向跡(7), 啓明(2), 啓聖(3), 善隣同窓會會報(1), 四海 公論(19), 回光(15), 培材(63), 培花(36), 大潮(16), 大衆醫學(1), 天道敎會月報(13), 好鐘(1), 如是(1), 婦人公論(1), 學友 俱樂部 (4), 學生(19), 學生界(1), 宗敎時報(7), 家庭の友(2), 崇實(27), 崇 實活泉(17), 延禧(30), 徽文(28), 慶鐘(7), 我聲(2), 搖籃(4), 文章 (53), 文藝公論(25), 文藝時代(1), 文藝月刊(3), 新世紀(4), 新人 文學(95), 新人間(31), 新家庭(67), 新朝鮮(1), 續刊(9), 新東亞 (98), 新生①(108), 新生活(8), 新興(13), 新詩壇(1), 新女性(14), 日新(3), 春秋(8), 時鍾(3), 朝光(75), 朝鮮(54), 朝鮮之光(5), 朝鮮 文學(3), 朝鮮文檀(131), 朝鮮詩壇(20), 東光(134), 東光叢書(5), 東方評論(1), 桂友(31), 現代評論(3), 琢磨(1), 白光(2), 白潮(4), 眞生(29), 禪苑(31), 而習(1), 聖火(3), 英實(10), 衆明(6), 詩人春 秋(5), 詩學(1), 農業朝鮮(1), 進明(2), 金剛杵(25), 長恨(1), 開闢 (27), 靑年(23), 高敞(70), 女性(45), 梨花(71) (Korean Research Memory, 2018).
모든 시조작품들을 제목과 내용 모두를 검토하여 곤충이나 곤충명과 관련된 단어가 사용된 시조들을 연도 별로 정리하였 으며 시어의 문학적 의미도 병행하여 조사하였다.
결과 및 고찰
6,604편의 조사 시조들 중 곤충 관련 시어가 등장하는 시조 는 215편이었으며 제목에 곤충 관련 단어가 포함되어 있는 시 조 작품들은 조사대상 시조 작품들의 0.4%인 26편에 불과하였 다(Table 1).
제목에 곤충 관련 단어가 사용 된 시조 작품들은 1930년대와 1940년대가 11편으로 가장 많았는데 조사 대상 전체 작품 수 대비 비율에서는 1940년대가 2.2%로 가장 높았다(Table 1).
곤충 관련 시어가 사용된 시조 작품 수는 1930년대가 124편 으로 가장 많았는데, 조사 대상 시조 작품 수를 고려한 시어 내 곤충 관련 단어 등장 작품 비율은 1920년대가 5.1%로 가장 높 았다(Table 1).
곤충관련 시어들은 모두 257번 등장하였는데 30종류의 곤 충으로 구별할 수 있었다(Table 2).
30종류의 곤충 관련 시어들 중 벌레소리와 같이 곤충 자체가 아닌 벌레의 울음소리를 나타내는 것이나 곤충, 벌레, 미물, 악 충과 같이 특정의 곤충 이름이 아닌 곤충을 포괄적으로 나타내 는 시어들 이외에 구체적인 곤충의 종류를 구별할 수 있는 것은 24종이었다(Table 2).
가장 많이 사용된 곤충류 시어는 나비로 57회 등장하였으며, 벌레가 44회, 귀뚜라미가 45회로 이들 세 종류가 전체 사용 곤 충 관련 시어의 56.8%를 차지하였다(Table 2).
가장 많이 사용된 세 종류의 곤충 관련 시어들 중 나비와 벌 레는 모든 조사 단위 연도에 보편적으로 등장하였지만 귀뚜라 미는 1900년도와 1920~1930년도 작품들에서만 확인되었는데 특히 1930년대 작품에만 전체 등장 횟수의 80%인 36회 등장하 였다(Table 2).
누에와 베짱이, 메뚜기, 불나방, 송충이, 소금쟁이, 자벌레는 1회만 등장하였는데(Table 2) 1927년 10월 1일 동아일보에 수 록된 늘샘의 ‘가을’이라는 시조에 등장하는 메뚜기는 우리나라 시조작품에 최초로 등장하는 메뚜기 시어였다(Korean Research Memory, 2018).
1932년 2월 9일에 고려시보에 실린 이주영의 ‘時調 失題’에는 송충이가 시어로 사용되었는데 이 또한 우리나라 시조에 최초 로 등장하는 송충이 관련 시어였다(Korean Research Memory, 2018). 하루살이는 1930년 1월 4일 조선일보에 실린 韓晶東의 ‘新年의 希望’에 처음 등장하였으며 잠자리는 1917년 9월에 靑 春에 실린 한샘 최남선의 ‘녀름길’에 처음 등장하였다(Korean Research Memory, 2018).
말똥구리와 소금쟁이, 베짱이는 1941년 4월 文章에 樹州가 지은 ‘昆蟲 九題 말똥구리’와 ‘昆蟲 九題 소금쟁이’, ‘昆蟲 九題 벳쨍이’라는 제목의 시조에 처음 등장하였다(Korean Research Memory, 2018).
상기의 昆蟲 九題라는 제목이 붙은 10편의 시조 작품들이 발 표되었는데, 여기에는 자벌레, 딱정벌레, 반딋불, 불나비, 말똥 구리, 오즘쌔기, 벳쨍이, 소금쟁이, 문각씨, 개고리가 등장한다 (Korean Research Memory, 2018). 이들 중 개고리는 개구리를 나타내는 것으로 실제 곤충과는 관계없는 것이었고, 아래의 ‘昆 蟲 九題 門閣氏’라는 제목의 시조에 등장하는 ‘문각씨’는(Korean Research Memory, 2018) 어떤 곤충인지 파악 할 수 없었다.
한편 위의 잡지에 수록 된 ‘昆蟲 九題 딱정벌레’라는 제목에 등장하는 딱정벌레는(Korean Research Memory, 2018) 우리 나라 시조에 등장하는 최초의 ‘딱정벌레’ 시어였다.
Lee (2010)는 2,618수의 우리나라 고시조 작품들 속에 곤충 이 등장하는 시조는 조사 대상 시조의 1.5%인 40수에 불과하다 고 하였으나 이 보다 많은 작품수를 대상으로 조사한 Kim and Yu (2016)는 6,762수의 고시조 작품들 중 곤충류 어휘가 239회 등장하였다고 하여 전체 조사 대상 시조 편수의 3.5%에 해당하 는 양이나 한 수의 시조 내에 곤충류 어휘가 중복되어 등장하는 시조 수를 감안하면 실제 편수의 비율은 이보다 낮을 것으로 생 각되는데 근대시조에서는 3.3%인 215수 작품에 257회의 곤충 관련 시어가 사용되어 고시조와 유사한 곤충 관련 시어 등장 작 품 수를 보였다. 한편 고시조에서는 26종의 곤충이 시어로 등장 하였고, 곤충 어휘들 중에는 나비가 38.5%, 호랑나비가 14.6%, 귀뚜라미 8.8%, 벌 8.4%로 나비의 하위 종인 호랑나비를 합하 면 53%로 전체 곤충류 어휘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였다(Kim and Yu, 2016). 그런데 근대시조에서는 30종류의 곤충이 시어 에 등장하였으며, 나비가 21.8%의 가장 높은 등장 빈도율을 보 였지만 귀뚜라미(17.5%)나 벌레(17.1%)의 등장 점유율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근대시조의 조사 작품수와 Kim and Yu (2016)가 조사한 고 시조 작품수가 6,604수와 6,762수로 비슷하고, 이들 작품들에 곤충 어휘의 등장 수도 비슷하였지만 고시조의 경우 고려말에 서 일제강점기 이전까지 400여 년 동안의 작품이고, 근대 시조 의 경우 1900년부터 1945년까지의 작품임을 감안하면 곤충 종 류의 양적 차이를 직접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지만 두 시기의 시조작품에 등장하는 곤충 어휘의 수는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 다. 반면 상대적으로 작품 활동 시기가 짧은 근대시조에서 곤충 관련 시어의 등장 빈도가 고시조와 비슷하다는 것은 근대화 시 기에 곤충에 대한 인식이 좀 더 보편화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1940년대 이후의 작품들에서는 이전의 시조 작품에 등장 하지 않았던 딱정벌레, 말똥구리, 소금쟁이, 자벌레 등의 곤충 이 처음으로 등장하여 일반인들이 인식하는 곤충의 종류가 좀 더 구체화된 것으로 추정된다.
나비는 고시조에 등장하는 곤충관련 시어의 점유 비율보다 는 낮았지만(Lee, 2010;Kim and Yu, 2016) 근대시조에 사용 된 곤충관련 시어들 중 가장 빈번하게 사용된 곤충으로 흰나비 와 노랑나비, 호랑나비를 포함하면 70번 등장하여 27.2%의 점 유 비율을 보였는데 특히 1920년대와 1930년대 작품들에서 높 은 등장 빈도를 보였다. 이는 이들 시기에 시조 작품 내에서 나 비를 과거 조선시대 군주로 인식하여 의인화 주체로서 다루었 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한편 고시조에서는 16세기에서 19세기 까지 모든 시대에 걸쳐 나비가 시어로서 사용된 시조 작품들이 있었는데 주세붕의 오륜가를 비롯하여 김수장의 해동가곡, 안 민영의 작품 등에서 23회 사용되었다(Lee, 2010).
귀뚜라미는 고시조에서도 나비류를 제외하고, 두 번째로 많 이 시어로 등장한 곤충이었는데(Kim and Yu, 2016) 근대시조 에서는 사용된 점유 비율이 나비와 비슷한 수준으로 높았다. 곤 충들 중에는 완상(玩賞)의 대상인 경우도 있는데 소리를 내는 곤충들도 완상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으며 우리 선조들도 귀뚜 라미나 베짱이의 청명한 소리를 즐겨왔다(Park, 2001;Kim et al., 2015). 따라서 가을이 되면 정겹게 다가오는 귀뚜라미의 울 음소리로 인하여 귀뚜라미는 가을을 대표하는 계절을 나타내 는 곤충으로 많은 작품에 등장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아울러 ‘벌래소리’라는 시어도 많이 사용되었는데 이는 귀뚜라미나 여 치의 울음소리를 뜻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시조보다도 짧은 일 본의 전통 정형시인 하이쿠(俳句)에서는 음절의 제약뿐만 아니 라 사계절을 나타내는 季節語를 반드시 사용해야 하는데 귀뚜 라미나 곤충의 울음소리는 가을을 상징하는 계절어로 주로 사 용되었다(Dunn, 2000).
한편 근대시조에 등장하는 곤충 시어들의 의미상 특징은 다 음과 같다.
첫째, 세태풍자, 현실비판, 계몽 등의 주제를 다룬 작품들을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의 곤충 시어가 계절적 배경과 연관된다. 구체적으로 나비와 벌은 봄을, 잠자리와 매미는 여름을, 귀뚜라 미는 가을을 나타내는 시어로 주로 사용되었다. 이는 곤충들의 생애 주기에서 자연스럽게 비롯되었다고 볼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이 곤충을 통해 시간의 흐름을 인식하는 경우 가 많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이해할 수도 있다. 일본의 전통 정 형시인 하이쿠에서도 다양한 곤충들이 계절을 나타내는 시어 로 사용되고 있었는데 집파리와 나비, 달팽이는 봄을 상징하는 것으로 사용되었고, 모기, 개미, 매미, 거미, 나방 등은 여름을 나타내는 시어로 메뚜기, 귀뚜라미, 베짱이 등은 가을을 나타내 는 시어로 사용되었다(Dunn, 2000).
둘째, 조사 대상 작품의 과반수 이상에서 곤충은 화자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한 매개체, 즉 객관적 상관물(Objective Correlative)로 사용되었다. 객관적 상관물은 T. S. 엘리엇이 세 익스피어의 작품 「햄릿」을 비평하면서 언급한 개념이다. 엘리 엇은 주인공 햄릿이 자신의 주관적인 감정을 직설적으로 표현 함으로써 독자들에게 감정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데 실패했 다고 평가하면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주관적인 감정을 객관적인 사물에 의탁하여 표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감정을 객관화하는 데 활용된 사물이 ‘객관적 상관물’이다.
근대시조에서 곤충을 객관적 상관물로 활용하여 표현된 감 정들은 1) 임에 대한 그리움, 이별로 인한 슬픔, 외로움 2) 인생 무상, 3) 객수, 4) 망국민으로서 느끼는 정회, 5) 고향에 대한 그 리움, 6) 늙음에 대한 한탄 등과 같이 매우 다양한 형태로 드러 난다. 이 중에서 1)과 2)가 가장 높은 빈도를 보이며, 모든 연대 에 고루 등장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아마도 1)과 2)가 인간 이 느끼는 가장 보편적인 감정이기 때문일 것이다.
동아일보 1925년 9월 10일자에 실린 孤星 이서구의 시조 (Korean Research Memory, 2018)는 벌레를 객관적 상관물로 활용함으로써 이별로 인한 슬픔과 임에 대한 그리움의 감정을 매우 효과적으로 형상화한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 작품에서 화자는 임과의 이별 때문에 서러운 감정을 지니 고 있지만 자신의 감정을 직설적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그 대신 에 풀숲에 숨은 벌레의 울음소리가 서럽게 들린다고 말함으로 써 자신의 내면이 매우 서러운 상태에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울려거든 차라리 님의 창에 가서 울라고 이야기함으로써 임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을 드러낸다.
이 밖에도 망국민으로서의 정회를 표현한 이병기의 ‘仁王山 저믄 날’(동아일보, 1926년 7월 3일) (Korean Research Memory, 2018) 역시 주목할 만한 작품이다.
1926년이면 일제의 검열 때문에 망국민으로서 느끼는 감정 을 직접적으로 표현하기 어려웠던 시절이다. 이 때문에 이병기 는 거미와 나비라는 객관적 상관물을 활용하여 망국민으로서 느끼는 감정을 표현한다. 이 작품에서 덕수궁 석조전의 거미는 일제이거나 일제에 부역하는 조선인을 상징하며, 나비는 망국 민을 상징한다. 이를 통해 이병기는 일제의 감시 하에 놓인 망 국민의 서글픈 처지를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또한 일제에 게 주권을 거의 빼앗기다시피 한 1910년 7월 12일 대한민보에 발표된 작품(Korean Research Memory, 2018)도 ‘復國鳥(나라 를 회복하는 새, 우국지사)’와 거미를 대립시킴으로써 국권회 복의 의지를 드러냈다는 점에서 이병기의 시조와 맥락을 같이 한다.
셋째, 약육강식의 세태를 풍자하고 현실을 비판하거나 민중 을 계몽하기 위해 곤충을 활용하였다. 우선 세태를 풍자하고 현 실을 비판하는 작품에서 거미는 약자(强者)나 함정을, 굼벵이 는 인간을 해치는 존재로 상징되었으며, 나비와 쉬파리는 약자 로 상징되었다. 민중 계몽을 주제로 하는 작품에서 나비는 문명 화, 귀뚜라미는 의식이 깨어 있는 존재, 자벌레와 말똥구리는 쉬지 않고 노력하는 존재로 상징되었다. 특기할 만한 것은 1910 년까지 대한매일신보나 대한민보, 제국신문에 발표된 작품들 은 그 이후에 발표된 작품에 비해 그 숫자가 훨씬 적음에도 불 구하고 이 유형에 해당하는 작품들의 숫자가 거의 비슷하다는 점이다. 구체적으로는 전자가 10편(총 11편 중에서 재수록된 작품 1편은 제외)이고, 후자는 12편이다. 이렇게 된 데는 이 시 기가 일제에 강제 병합되기 이전이었다는 점, 그리고 이 시기 이후에 개인의 내면이 보다 더 중시되는 사회로 변모했다는 점 등이 주요한 원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이 밖에도 나비와 벌의 역동성을 형상화함으로써 봄의 활기 찬 생명력을 드러내거나, 매미-매움,쓰르라미-씀의 언어적 유 사성을 이용하여 세상살이의 힘겨움을 드러낸 작품들을 포함 하여 다양한 의미로 곤충들이 활용되고 있다. 그런데 이들 작품 에서 사용된 곤충 시어들은 몇몇 작품을 제외하면 전통적으로 사용되던 의미 맥락을 크게 벗어났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에 반해 1933년 10월 8일 동아일보에 발표된 雪波의 ‘秋吟 귀뜨라미’ (Korean Research Memory, 2018)는 사람들의 통념 을 깨트린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 작품에서 雪波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과 달 리 귀뚜라미는 우는 것이 아니라 노래하는 것이라는 재미있는 발상을 보여준다. 그뿐만 아니라 귀뚜라미의 노래가 죄가 없는 순수한 소리라는 발상도 매우 특이하다. 이러한 발상법을 통해 雪波는 똑같은 귀뚜라미 소리라도 듣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매 우 다르게 인식된다는 점을 독자들에게 환기한다.
1939년 1월 삼천리에 발표된 춘원 이광수의 ‘念佛 매암이’ (Korean Research Memory, 2018)에 등장하는 매미도 독특한 의미를 담고 있다. 이 작품에서 이광수는 자신이 도를 깨달을 수 있도록 임이 보내 준 존재로 매미를 형상화한다.
이상에서 확인한 것처럼 근대시조에서 곤충은 계절적 배경, 객관적 상관물, 세태풍자, 현실비판, 계몽, 봄의 활기찬 생명력, 세상살이의 어려움, 통념비판 등과 같이 다양한 주제를 형상화 하는 데 활용되었다.
고대에서 현대로 변환되는 과도기로 사상과 학문에 있어 격 동의 시기였던 근대시기에 곤충이 가지는 문화적 의미를 파악 해 보기 위하여 근대 시조에서 곤충관련 시어들을 조사 한 결과 이전 고시조에 비하여 짧은 작품 활동 기간이었지만 고시조와 유사한 빈도의 곤충관련 시어가 사용되었고, 등장하는 곤충의 종류도 50%가량 다양해져 곤충에 대한 인식의 확대가 이루어 지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아울러 곤충 시어를 객관적 상관물로 사용하면서 일제강점기의 망국민으로서 가지는 회한 을 표현하는 대상으로 이용하거나 세태 풍자나 현실 비판, 민중 계몽을 위해 곤충 시어를 사용 한 것은 이전 고시조 작품 시대 에 비하여 곤충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은진 결과로 생각된다. 즉 곤충을 한낮 미물로서 하찮은 존재로 간주하거나 울음소리 를 통해 계절적 시기를 나타내는 것과 같은 단편적인 곤충에 대 한 이해뿐만 아니라 다양한 곤충 종류에 대한 언급이나 곤충의 행동이나 생활사를 통해 인간 생활과 결부시켜 인식하는 것과 같은 곤충에 대한 인식 정도의 다양함과 심층적 인식이 이루어 지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인간의 모든 생활에 곤충이 직· 간접적으로 관여하고 있는 곤충에 대한 다양한 분야의 문화적 실태 파악을 통해 시대상과 곤충학이 일반인들에 인식되는 변 화상을 지속적으로 연구하여 인문학에 자리잡고 있는 곤충학 에 대한 다양한 이해가 필요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