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무치(Locusta migratoria (L.)) (메뚜기목: 메뚜기과)는 전 세계적으로 잠재적 파괴력이 높은 농업해충들 가운데 하나로 서, 밀도에 따라 형태적, 생리적, 행동적 특성에서 변화를 보이 는 ‘다현(多現)현상(polyphenism)’을 가지는 곤충이다(Uvarov, 1966, 1977; Pener, 1991). 다현현상은 낮은 밀도의 개체들은 단독형(solitarious phase)으로 주로 한곳에 머무르지만, 높은 밀도의 개체들은 군집형(gregarious phase)으로 무리를 지어 이동하는 현상으로서, 이러한 특징은 장거리 이동성 메뚜기류 의 분포 패턴 및 집단유전학 연구에 있어 중요하게 고려되고 있 다(Lovejoy et al., 2006; Chapuis et al., 2008). 풀무치의 단독형 약충은 주변환경과 비슷한 색깔로 위장하는 녹색 또는 갈색의 몸 색깔을 띠는 반면, 군집형 약충은 눈에 잘 띄는 노랑색 또는 오 렌지색 바탕에 검정색 무늬의 몸 색깔을 보인다(Uvarov, 1921).
풀무치는 열대지역에서부터 한대지역까지 광범위하게 존재 하나(Uvarov, 1966, 1977; Farrow and Colless, 1980), 최근의 분자생물학적 연구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북방계통(Northern lineage)과 남방계통(Southern lineage)으로 대별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Ma et al., 2012). 북방계통은 주로 유럽 및 아시 아 온대지방(일본, 중국 포함)에 분포하고 있으며, 남방계통은 아프리카, 유럽 남부, 중동, 인도, 중국 남부(하이난), 호주에 분 포한다. 일본에서 풀무치는 대부분의 지역에서 북방계통이 보 편적으로 발생하고 일부 지역(오키나와, 혼슈의 니가타, 도치 기)에서 남방계통이 보고되었으며(Tokuda et al., 2010), 최근 의 대발생은 작은 섬, 공항 및 간척지내의 인공적으로 조성된 초원들에서 작은 규모로 국한되어 발생하고 있다(Ito and Yamagishi, 1976; Yamagishi and Tanaka, 2009). 일본에서 풀 무치는 위도에 따라 생리생태적인 측면에서 다양한 특성들을 보인다(Hakomori and Tanaka, 1992; Tanaka, 1994a,b). 예를 들어, 북쪽에서는 일화성, 중간지대에서는 이화성, 남쪽에서는 다화성의 생활사를 보이며, 이와 같은 현상들은 유럽과 중국 대 륙에서도 보고된 바 있다(Verdier, 1972; Tanaka and Zhu, 2008).
2014년 8월 28일 전라남도 해남군 산이면 간척지 일대(약 20 ha)에서 풀무치 약충들이 대발생하여, 주변 수로, 공터, 도로변, 밭둑의 화본과 식물인 참억새(Miscanthus sinensis), 띠(Imperata cylindrica), 갈대(Phragmites communis) 등에 큰 피해를 입혔 다(Fig. 1). 농작물의 경우 대발생 지점의 주변에서 재배되던 벼 와 기장의 일부가 큰 피해를 받았다. 이번에 발생한 풀무치 약 충은 기존에 국내에서 발견되던 녹색 또는 갈색의 단독형이 아 니라 전체적으로 오렌지색 바탕에 검정색을 띠는 전형적인 군집 형으로서 1945년 해방 이후 국내에서는 최초의 발생사례이다.
본 연구는 해남 지역의 풀무치 대발생 지점에서 약충 또는 성충을 채집하여 이들에 대한 유전적 특징을 살펴보았다. ‘DNA 바코드’(Herbert et al., 2003)에 많이 이용되는 미토콘드리 아 cytochrome oxidase subunit I (COI) 유전자 염기서열을 이 용하여 유적적 다양성을 분석하였고, Genbank에 등록되어 있 는 세계 각국의 다양한 풀무치 유전자 염기서열들과 비교하여 북방/남방계통 중 어느 계통과 유전적 유사성을 보이는지를 검 토하였다.
재료 및 방법
2014년 9월 3-4일, 11-12일 전라남도 해남군 산이면에 위치 한 풀무치 대발생 지점의 수단그라스에서 약충(군집형 흑색) 1 개체, 성충(군집형 녹색 또는 갈색) 11개체를 채집하여 99% 알 코올에 보관하였다. Genomic DNA 추출은 DNeasy® Blood & Tissue Kit (QIAGEN Inc., Dusseldorf, Germany)를 이용하였 다. PCR 증폭은 2개 프라이머(LCO1490; 5′-GGT CAA CAA ATC ATA AAG ATA TTG G-3′; HCO2198; 5′-TAA ACT TCA GGG TGA CCA AAA AAT CA-3′) (Folmer et al., 1994) 와 AccuPower® PCR PreMix (Bioneer, Seoul, Korea)를 이용 하여 실시하였다. PCR 반응 산물들은 ABI 3730xl sequencer (Applied Biosystems)를 이용하여 양방향으로 염기서열을 분 석하였고, Clustal X 1.83 (Thompson et al., 1997)를 통해 정렬 하였다. 분석된 12개의 COI 염기서열은 미국 국립생물정보센터 (NCBI)의 유전자 은행에 등록하였다(Accession nos. XXXXXX – XXXXXX). 이들 군집형 풀무치의 유전적 계통을 알아보기 위하여 GenBank (http://www.ncbi.nlm.nih.gov/ genbank/)에 보고된 북방계통 11개, 남방계통 15개 등 총 26개의 풀무치 COI 염기서열(Ma et al., 2012; Moulton et al., 2010; Tokuda et al., 2010; Song et al., 2008)을 새롭게 분석된 12개 COI 염기서 열과 취합하였다. COI 염기서열의 계통분석은 MEGA 5.0 (Tamura et al., 2011)을 사용하여 염기서열 정리 및 Neighbor– Joining (NJ)를 분석하였으며, 분석 개체들의 유전적 거리는 MEGA 5.0의 K2P distance model (Kimura, 1980)를 사용하여 계산하였다.
결 과
총 12개체의 풀무치로부터 565 bp의 COI 유전자 염기서 열을 해독하고, 개체들의 체색 변이별로 분류하여 녹색 6개 체(Gr, 성충), (흑)갈색 6개체(B1, 약충 1; Br, 성충 5)의 유전 적 차이를 분석하였다(Table 1). 녹색 풀무치는 집단내 평균 0.23%(최소 0.00%-최대 0.70%)의 유전적 변이를 보였으며, (흑)갈색 풀무치는 집단내 평균 0.37%(0.00%-0.70%)의 유 전적 변이를 보였다. ‘녹색 대 (흑)갈색’ 집단간 평균 0.31% (0.00%-00.90%)의 유전적 변이를 보였다.
군집형 풀무치의 체색변이의 계통적 특성을 알아보기 위 해 NJ 분석을 실시한 결과(Fig. 2), 녹색, (흑)갈색 집단 모두 각각 독립된 그룹으로 나뉘어지지 않았고 3개의 haplotype 이 존재함을 확인하였다. Gr(1), Gr(3), Gr(4), Gr(6), Br(2), Br(4), Br(5) 개체들은 동일한 COI 염기서열을 보였으며 (haplotype I), Gr(5), Br(1), Bl(6) 개체끼리 동일한 COI 염기 서열을 보였으며(haplotype II), Br(3)는 단독으로 haplotype III였다. 한국에서 채집된 12개의 풀무치 COI 염기서열과 GenBank에 보고된 26개의 풀무치 COI 염기서열을 취합하 여 NJ 분석한 결과, 해남지역에서 대발생한 풀무치 12개체 의 미토콘드리아 유전자 COI 염기서열은 모두 북방계통에 속하는 것을 확인하였다.
고 찰
아시아에서 군집형 풀무치의 대발생은 인접 국가인 중국에 서 주로 보고되었고(Tanaka and Zhu, 2008), 최근 인도(Kumar et al., 2009), 인도네시아(Lecoq and Sukirno, 1999)에서도 대 발생이 보고되었다. 특히, 중국 후베이(湖北) 지방에서는 일년 에 2세대(여름, 가을)가 대발생하였고, 기후 변화, 긴 가뭄, 경작 지 이용 변화 등이 대발생 원인으로 분석되었다(Zhang and Li, 1999; Kang and Chen, 1992).
우리나라에서 군집형 풀무치의 대발생이 과거에 실재했는 지는 아직도 많은 의문이 남는다. 고문헌의 해충기록에 대한 분 석(Paik, 1976; Park et al., 2010)에 따르면, 삼국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풀무치로 추정되는 것은 비황(飛蝗)으로 기록된 것이 가장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Park et al. (2010)에 따르면 조선시 대 발간된 조선왕조실록 및 해괴제등록(解 怪祭謄錄)에 보이는 비황의 기록 중 발생시기, 가해양상 등을 볼 때 풀무치의 대발 생으로 의심되는 것은 선조 37년(1604) 강원도에서 기록이 유 일하였다. 또한 조선시대 이후 현재까지 풀무치의 대발생에 대 한 학술적 기록은 1920년 평안도 청천강 유역의 사례만이 알려 져 있다(Muramatsu, 1921). 이 같은 결과로 볼 때, 이제까지 우 리나라에서 풀무치의 대발생은 매우 희박하며, 2014년에 해남 지역에서 군집형 풀무치의 대발생은 매우 이례적인 현상이라 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적어 도 1945년 해방 이후 군집형 풀 무치에 대한 명확한 학술적 보고는 본 연구가 처음이다.
풀무치의 대발생 원인으로는 건조와 강우량이 주요 원인으 로 보고되었다. 풀무치는 일반적으로 연평균 강수량이 1,000 mm 이하인 건조한 열대지역들(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 등)에 서 빈발한다. 단독형 개체들은 주로 월 최고 강우량 50-100 mm 사이에서 발생하며, 군집형 개체들은 최고 강우량 월 25-100 mm 사이에서 발생한다(Launois, 1974; Lecoq 1974, 1991, 1995). 필리핀에서는 풀무치의 발생이 건조 기간과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들이 잘 알려져 있다(COPR, 1982; Uichanco, 1936). 풀무 치의 대발생은 가뭄이 심한 년도를 지난 다음에 일어나는데, 예 를 들어 인도네시아 남쪽 수마트라 지역에서 풀무치는 1991년 (가뭄해)에 이은 1992년 대발생, 1994년(가뭄해) 다음의 1995- 1996년 대발생, 1997년(가뭄해) 다음의 1998년 대발생이 보고 되었다(Lecoq and Sukirno, 1999).
본 연구에서는 해남지역의 풀무치 대발생 지점에서 채집한 풀무치의 COI 염기서열을 분석하여 유전적 계통을 확인한 결 과, 이들 군집형 풀무치는 0.00%-0.90%의 유전적 변이를 보였 으며, 모두 북방계통에 속한다는 것을 처음으로 밝혀냈다. 우리 나라 주변국에서 풀무치는 대부분 북방계통이며, 남방계통은 일본의 남부(오키나와) 및 중국 남부(하이난) 등 아열대지역에 대부분 분포하며, 일본의 경우 드물긴 하지만 온대지역(혼슈의 산악지대)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Tokuda et al., 2010).
해남지역에서 군집형 풀무치가 대발생한 원인은 관련 정보 가 부족해서 추정하기 어렵다. 대발생이 가뭄이 심한 연도를 지 나며 일어난다는 인도네시아의 사례와 달리 해남지역에서 전 년도에 특이적인 가뭄현상은 나타나지 않았다. 2014년 대발생 지점인 해남군 산이면 일대의 환경적 특성을 요약하면, 1) 간척 호수인 영암호와 인접한 넓은 간척지로서, 2) 참억새, 띠, 갈대 등 기주식물이 풍부하고, 3) 기주작물인 벼 및 사료작물(수단그 라스, 이탈리안라이그라스)을 친환경적으로 재배하고, 4) 농수 로 주변의 토양조건(자갈+사질양토)이 알맞게 갖춰져 있어 풀 무치의 산란 및 증식에 매우 유리한 조건임에 틀림없다. 이러한 조건은 우리나라 서남해안의 간척지 및 하천변에서 어렵지 않 게 관찰할 수 있다. 해남지역에서 군집형 풀무치의 대발생은 우 리나라에서 풀무치가 초래할 수 있는 엄청난 피해에 대한 농업 적, 환경적 중요성을 알리는 계기로 생각되며, 앞으로 관련된 분류학, 생태학, 유전학 등 관련된 분야의 종합적인 연구가 이 루어져야 할 것이다. 특히 군집형 풀무치의 대발생 가능성 또는 잠재적 위험성을 예측하기 위하여 유전적(북방/남방) 계통의 분포, 장기간의 기상조건 및 주변 환경인자들에 대한 관찰, 그 리고 이들의 상관관계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